07/13 #시편 116:1-19
제목ㅣ겸손하신 경청자
은혜받은 말씀
시편 116: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은혜 받은 내용
하나님은 참 겸손하신 경청자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 속에 있을 때에도 친히 그 자리에 있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음성과 간국를 들으시는 분이다. 어떤 사람은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는 순간에 무엇을 하셨냐고, 스올의 고통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냐고 말하지 모르겠다. 그건, 나도 모르겠다. 사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이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는 순간이고, 스올의 고통을 지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를 때, 스올의 고통을 지날 때 나를 가까이 하지 않기를 원하고, 그리고 그런 현실에서는 나의 목소리를 누군가에게 전달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시다. 그분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모두가 나를 가까이 하기를 원하지 않을 때에도,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때에도 나의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높고 높은 보좌에 앉으신 분은 우리의 고통과 신음을 멀리서 지켜보는 분이 아니시다. 확실히 듣고 계신다. 물론, 그분이 일하시고 반응하시는 속도는 우리의 기대와 계획과는 참 다르지만 시편 기자는 고백한다. “하나님이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라고. 그래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라고 요청한다. 시편 기자는 마치 “왜 기도 안하십니까? 고통 가운데 평안을 주시는 자리로 왜 나오지 않으십니까?” 라고 우리를 설득하는 듯 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은 어쩌면 우리의 기대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대단한 능력을 주신다. 사망 가운데 에서도, 눈물 속에도, 넘어짐 속에서도 “내 영혼아 평안함으로 돌아갈어다!” 라고 스스로에게 고백할 수 있게 만든다. 사람들이 너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니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어찌 갚을 수 있을지는 고민하며 감사한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적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이 없는 현실을 약속하지 않으신다. 그건 우리가 만든 신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그 속에서도 우리에게 찬송 주시는 하나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다.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을 주시는 분이시다. 다른 이를 보내지 않으시고 자신을 우리에게 보내주신다. 나도 평생 시편의 기자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라고 고백하는 자리에 이르고 싶다.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 같은 현실에 있는 사람에게도 이런 고백을 하게 하셨다면, 당신에게는 넘치게 하시지 않으실까요? 기도합시다"
기도
1. 하나님, 기도하는 시간을 사모합니다.
2. 하나님, 내가 바라는 응답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바랍니다.
07/13 #시편 116:1-19
제목ㅣ겸손하신 경청자
은혜받은 말씀
시편 116: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은혜 받은 내용
하나님은 참 겸손하신 경청자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 속에 있을 때에도 친히 그 자리에 있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음성과 간국를 들으시는 분이다. 어떤 사람은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는 순간에 무엇을 하셨냐고, 스올의 고통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냐고 말하지 모르겠다. 그건, 나도 모르겠다. 사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이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는 순간이고, 스올의 고통을 지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를 때, 스올의 고통을 지날 때 나를 가까이 하지 않기를 원하고, 그리고 그런 현실에서는 나의 목소리를 누군가에게 전달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시다. 그분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모두가 나를 가까이 하기를 원하지 않을 때에도,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때에도 나의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높고 높은 보좌에 앉으신 분은 우리의 고통과 신음을 멀리서 지켜보는 분이 아니시다. 확실히 듣고 계신다. 물론, 그분이 일하시고 반응하시는 속도는 우리의 기대와 계획과는 참 다르지만 시편 기자는 고백한다. “하나님이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라고. 그래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라고 요청한다. 시편 기자는 마치 “왜 기도 안하십니까? 고통 가운데 평안을 주시는 자리로 왜 나오지 않으십니까?” 라고 우리를 설득하는 듯 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은 어쩌면 우리의 기대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대단한 능력을 주신다. 사망 가운데 에서도, 눈물 속에도, 넘어짐 속에서도 “내 영혼아 평안함으로 돌아갈어다!” 라고 스스로에게 고백할 수 있게 만든다. 사람들이 너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니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어찌 갚을 수 있을지는 고민하며 감사한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적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이 없는 현실을 약속하지 않으신다. 그건 우리가 만든 신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그 속에서도 우리에게 찬송 주시는 하나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다.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을 주시는 분이시다. 다른 이를 보내지 않으시고 자신을 우리에게 보내주신다. 나도 평생 시편의 기자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라고 고백하는 자리에 이르고 싶다.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 같은 현실에 있는 사람에게도 이런 고백을 하게 하셨다면, 당신에게는 넘치게 하시지 않으실까요? 기도합시다"
기도
1. 하나님, 기도하는 시간을 사모합니다.
2. 하나님, 내가 바라는 응답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