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2ㅣ마태복음 5:27-37
제목ㅣ무얼 “보는” 하루 인가?
은혜받은 말씀
마태복음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은혜 받은 내용
모든 욕망은 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최근 핸드폰에서 SNS를 지웠다. 남들과의 비교가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에게도 눈이 갔다. 보는 것이 무슨 문제이겠나 싶겠지만 오늘을 살기보다는 오늘의 현실을 원망하기도 했고, 오늘 본문에 나온 “보는”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이라는 뜻은 묵상하며 가지려고 애쓰는 모습인데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을 향해 그런 마음을 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멀리하려는 결단을 내렸다. 인간이 보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인데 적어도 나는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아내의 아름다움과 존재를 가벼히 여기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서로에게 보내주신 가장 좋은 선물 아니겠는가?
최근 청년들과 나눈 설교처럼 사랑은 감정이 아닌 헌신이다. 흥분되고 설레이는 감정이 사라진 후에도 지속되는 서로에 대한 헌신과 의지이다. 사실, 세상에서 보면 인기 없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그토록 받고 싶은 사랑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신을 향해 어떤 떨림이나 설렘이 사라진 후에도 지속적으로 변함 없이 사랑해주는 존재는 모두가 바라는 모습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사랑은 바로 끝없이 당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보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두려움과 절망, 배신과 아픔의 감정이 아닌 우리를 향한 당신의 헌신과 섬김과 의지를 택하셨다. 그 사랑을 계속 해서 “보는”, 묵상하고, 가지려고 애쓰는 시간을 통해서 나는 아내를, 누군가를 감정이 아닌 헌신으로 사랑할 수 있다.
이런 사랑은 오늘 본문 뒤에서 나오는 모습과도 같다. 나의 감정과 필요에 따라 사람을 바꾸고, 맹세하는 것이 아닌 변함 없이 신실하게 살아가는 삶이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약자를 이용하지 않는 것, 자신의 말에 책임감을 지니는 것은 사랑이자 신실함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믿을 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라는 한 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어제 심방을 하며 사업을 하던 어떤 분이 자신의 오른팔 같은 직원에게 큰 배신을 당해 더 이상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익과 손해 앞에 사람을 쉬어 버리지 않고, 떠나가지 않은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이자, 우리의 반응이다. 믿을 만하지 못한 내 모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하고, 신실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길.
적용 ㅣ
1. 하나님, 내가 보고 묵상하고 가지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은 주님 한 분임을 기억하게 해주세요. 말씀 앞에 주님이 행하신 일,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더 “보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2. 하나님, 사랑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감정에 무너지지 않고 헌신하는 사랑, 쉽게 배신하지 않는 사랑, 믿음 만한 사람으로 서 있는 책임의 사랑으로 서게 해주세요.
01/22ㅣ마태복음 5:27-37
제목ㅣ무얼 “보는” 하루 인가?
은혜받은 말씀
마태복음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은혜 받은 내용
모든 욕망은 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최근 핸드폰에서 SNS를 지웠다. 남들과의 비교가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에게도 눈이 갔다. 보는 것이 무슨 문제이겠나 싶겠지만 오늘을 살기보다는 오늘의 현실을 원망하기도 했고, 오늘 본문에 나온 “보는”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이라는 뜻은 묵상하며 가지려고 애쓰는 모습인데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을 향해 그런 마음을 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멀리하려는 결단을 내렸다. 인간이 보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무엇을 보느냐의 문제인데 적어도 나는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아내의 아름다움과 존재를 가벼히 여기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서로에게 보내주신 가장 좋은 선물 아니겠는가?
최근 청년들과 나눈 설교처럼 사랑은 감정이 아닌 헌신이다. 흥분되고 설레이는 감정이 사라진 후에도 지속되는 서로에 대한 헌신과 의지이다. 사실, 세상에서 보면 인기 없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그토록 받고 싶은 사랑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신을 향해 어떤 떨림이나 설렘이 사라진 후에도 지속적으로 변함 없이 사랑해주는 존재는 모두가 바라는 모습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사랑은 바로 끝없이 당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보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두려움과 절망, 배신과 아픔의 감정이 아닌 우리를 향한 당신의 헌신과 섬김과 의지를 택하셨다. 그 사랑을 계속 해서 “보는”, 묵상하고, 가지려고 애쓰는 시간을 통해서 나는 아내를, 누군가를 감정이 아닌 헌신으로 사랑할 수 있다.
이런 사랑은 오늘 본문 뒤에서 나오는 모습과도 같다. 나의 감정과 필요에 따라 사람을 바꾸고, 맹세하는 것이 아닌 변함 없이 신실하게 살아가는 삶이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약자를 이용하지 않는 것, 자신의 말에 책임감을 지니는 것은 사랑이자 신실함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믿을 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라는 한 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어제 심방을 하며 사업을 하던 어떤 분이 자신의 오른팔 같은 직원에게 큰 배신을 당해 더 이상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익과 손해 앞에 사람을 쉬어 버리지 않고, 떠나가지 않은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받은 사랑이자, 우리의 반응이다. 믿을 만하지 못한 내 모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하고, 신실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길.
적용 ㅣ
1. 하나님, 내가 보고 묵상하고 가지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은 주님 한 분임을 기억하게 해주세요. 말씀 앞에 주님이 행하신 일,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더 “보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2. 하나님, 사랑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감정에 무너지지 않고 헌신하는 사랑, 쉽게 배신하지 않는 사랑, 믿음 만한 사람으로 서 있는 책임의 사랑으로 서게 해주세요.